*28x14

*연반 몹레

*사망 표현 있음

 

 

 

 

 

01.

 마른 풀잎의 냄새가 났다. 뒤에서 짤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아슬하게 옆쪽으로 자전거를 탄 아이가 스쳐 지나간다. 작아져 가는 검은 교복을 바라보던 시게오는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보았던 교복과 같은 옷을 입은 갈색 머리의 남자아이가 강둑에 앉아있다. 저물어가는 햇빛에 아이의 머리가 금빛으로 빛났다. 그 모습에 시게오는 검정 일색이었던 자신을 생각한다. 동시에 회색빛 정장에 분홍색 넥타이를 매던 남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때의 남자와 같은 나이가 된 시게오는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당신은 검은색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저와는 다르게.
 검은 교복을 입은 아이는 어울리지 않는다기보다, 그 색에 묻힌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단정함과 우울한 기운 모두를 가진 아이. 시게오는 비어버린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아이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구두에 짓이긴 잡초들이 소리를 내어 아이의 시선을 끌었다.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시게오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디서부터 말을 걸어야 할까.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단어들을 데구루루 굴리다가 저도 모르게 뱉었다. 괜찮아?

 "누구세요?"

 어울리지 않는 질문에,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다. 물론, 떼어놓고 본다면 아이의 질문은 어울리다 못해 옳았다. 수상한 사람이 말을 걸면 즉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어렸을 적 어디선가 들어본 것만 같은 말이 떠올라 시게오는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곳엔 둘 뿐이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28살의 남자와 검은색 교복을 입은 14살의 아이. 시게오가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카게야마, 시게오라고 해."
 "이름을 물어본 게 아니었어요."

 그렇게 답한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잡초들을 털어냈다. 가방까지 주워든 아이가 금방이라도 등을 돌려 사라질 것만 같아 시게오는 팔을 뻗었지만 차마 붙잡을 수는 없었다. 누가 봐도 지금의 자신은 수상한 사람이었다. 어떡하지. 다급해진 마음에 시게오가 손을 내려 정장 안주머니를 뒤진다. 손끝에 종이 한 장이 잡혔다. 아이를 향해 내밀자, 아이는 여전히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건네진 종이를 바라보았다. 물론 글자를 읽어내려간 그의 표정이 더욱 찌푸려진 건 당연했다.

 "영등등 사무소 소장, 영능력자 카게야마 시게오?"
 "아, 응."
 "뭐가 이렇게 앞에 붙은 말이 많아요? 애초에 영등등이라는 말이 뭔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달싹거리던 시게오는 이내 꾸욱 입술을 물었다가, 말았다. 질문이 이어졌다. 영능력자라는건 뭐예요? 아이의 시선은 구겨진 명함의 모서리로 향해있었다. 그건, 설명하려던 시게오는 보여주는 게 빠를 것 같다며 흘러가던 강물 쪽으로 손을 폈다. 잔잔하던 물에 점점 파동이 일더니, 분수처럼 솟아올랐다가, 잘게 부서져 내렸다. 노을빛에 반사된 작은 물방울들이 반짝이며 작은 보석들이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에도 보석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비어있던 자리를 차지해 눈동자의 별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환호성을 지를 것만 같은 표정으로 아이는 시게오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창백하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 뺨이 붉었다. 

 "이건 영능력이라기 보다, 초능력인 거죠?"
 "유령도 보려면 볼 수 있어. 제령도 가능하고."
 "지금 한 건 유령의 짓이 아니잖아요? 형이 한 거죠?"

  형…. 익숙하면서도 낯선 호칭에 멈칫했던 시게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의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아까 괜찮냐고 물었죠? 아뇨, 안 괜찮아요." 

 괜찮지 않다는 말에 시게오가 굳은 얼굴을 했다. 뭔가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그러니까 형이 도와줘요. 사무소라는 건 상담도 해주나요?"
 "응, 그렇긴 한데. 심각한 일이야?"
 "형에겐 쉬운 일이에요."

 내일 사무소로 찾아갈게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눈앞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눈에 담았다.
 나이가 적진 않은 것 같은데 성격은 아둔한 것 같고. 사무소를 운영하는 사람치고는 허술한 부분이 있다. 아니, 많다. 예를 들면, 찾아간다는 자신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는 것과 같은.

 "상담 의뢰인의 이름도 안 물어봐요?"
 "아……."

 시게오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작게 묻는다. 이름이 뭐니? 아이는 처음과 다르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손을 내민다. 악수하자고? 새하얗고 작은 손을 내려다보던 시게오의 귀에, 아이의 이름이 날카롭게 꽂혔다.

 "레이겐. 레이겐 아라타카요."

 



 02.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몸뚱아리로 커다란 고통을 받아들였을 때, 시게오는 발끝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다. 모든 눈물을 쏟아내 버려 말라버린 땅이 결국은 부서져 버린 것이다. 땅 아래는 깊은 어둠이었다. 자신 외의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시게오는 그를 불렀다. 스승님. 저밖에 부르지 않았던 그의 이름을 외치며, 시게오가 눈을 떴다.

 마침 큰 예약이 없는 날이었다. 오전 손님을 떠나보낸 뒤로 시게오가 안절부절못하며 시곗바늘의 움직임만 지켜보고 있자, 그 옆에 떠 있던 녹색 악령-에쿠보는 인상을 쓴다. 예약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하지만 시게오에게는 최근 들어 제일 중요할 '예약 손님'을 기다리기에 저렇게 군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가 온다는 사실에 시게오는 사무실을 분주하게 치웠다. 언제나 책상 한켠에 올려져 있던 액자는 서랍 제일 아래 칸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시계가 4시를 가리키는 순간, 철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린 목소리에 시게오가 저도 모르게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안녕."

 그리고 놀란 눈을 한 아이에게 뱉은 인사는 짧았다. 아이는 언제 제가 놀랐냐는 듯이 웃는 얼굴로 안녕하세요. 답했다. 시게오는 저 웃는 얼굴이 가짜라 생각했다. 이른바 영업용 미소. 눈치는 챘지만, 굳이 그것을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저 아이 나름의 방어이고, 저 얼굴이 깨지는 순간 낯선 이인 자신에게서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시게오를 따라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온 레이겐은 눈동자만을 굴려 곳곳을 살펴봤다. 대체로 깔끔하고, 어떻게 보면 건조하기도 한 방이었다. 창문 근처에 어울리지도 않는 붉은 방울토마토 화분이 눈에 들어왔을 땐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또다시 보였다.

 "여기 잠깐 앉아있을래?"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창가에 흐릿하게 뭉쳐져 있던 그림자가 사라졌다. 
 레이겐을 소파에 앉힌 시게오는 한쪽에 있는 탕비실로 들어갔다. 차보다는 우유가 좋을까. 어디까지나 시게오의 어릴 적 취향이었지만. 한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냉장고를 뒤적였지만, 그렇게 찾아낸 우유가 일주일쯤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확인하고는 결국 찻잎을 꺼냈다. 뜨거운 물을 끓여 잎을 우리고, 레이겐에게 가져다줄 찻잔에는 얼음 하나를 떨어뜨렸다. 뜨거운 차를 마시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탕비실을 나서면 갈색 뒤통수가 보였다. 그 주위를 에쿠보가 한 바퀴 돌더니 시게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기에 시게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악령은 또다시 한숨을 뱉는다. 

 "조금 더 꾸미면 좋을 텐데요. 포스터라든가."

 시게오가 자리에 앉자마자 레이겐이 건넨 말은 예상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시게오가 차를 내오는 동안 사무실을 여기저기 뜯어 본 모양이었다. 방울토마토 말고 다른 화분도 좀 놓구요. 이어진 말에 시게오가 시선을 잠시 창가로 두었다. 아무 맛이 나지 않는 방울토마토. 그저 장식일 뿐인. 오래전 스승이 주었던 그때 그 화분은 아니었으나, 시게오는 종종 마트에서 씨앗을 사다가 맛없는 방울토마토를 피워내고는 했다. 시게오는 충동적으로 초능력을 사용해 방울토마토 하나를 따서 레이겐의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레이겐은 별다른 의심 없이 제 앞에 내밀어진 붉은 열매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굳은 표정이 되었다. 시게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예요, 이거……. 아무 맛도 안 나는데."
 "응. 원래 그래."
 "원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상담하고 싶다는 건 뭐야?"

 아무 맛도 나지 않았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았기에 괜히 불쾌해진 입속을 적당히 따뜻한 차로 헹구던 레이겐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오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허공을 둘러보더니 몸을 앞으로 기울여 시게오 쪽으로 가까이 다가와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인다.

 "가끔, 알 수 없는 것이 보여요. 희미하게 흐려진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게."

 레이겐의 속삭임과 동시에 시게오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에쿠보를 제외한 영혼은 없었다. 에쿠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레이겐에게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항상 보이는 건 아니에요. 레이겐이 덧붙이고는 시게오가 했던 것처럼 주변을 둘러본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져요. 딱히 해를 끼치지는 않는데 그래도 불안해서요."
 "제령 하기를 원하는 거야?"
 "아직은요. 뭔지 모르니까요."
 "뭔지 알고 나면 제령할 수도 있다는 소리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뭔지 모르니까요. 아직까지는 괜찮았다고 해도 이후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는 모르는 거죠."

 레이겐은 호기심에 비례하게 조심성이 많은 아이였다.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의 안전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그런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는 체질이었다고 하기에는 보이는 건 딱 그 그림자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라고는 했지만, 정확하게는 중학생이 되어 조미시에 이사 오고 나서부터였다는걸 알고 있기도 했다. 보이는 장소나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때로는 등굣길의 건널목에서. 때로는 노을 지는 하천 다리 위에서. 때로는, 하교 후 찾아온 수상쩍은 상담소의 창가에서.

 "지금 여기에 귀신이 있나요?"

 레이겐의 질문에 시게오는 저도 모르게 에쿠보를 바라봤지만-레이겐에게는 허공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고개를 저었다. 레이겐이 묻는 '귀신'이 에쿠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여기서도 보였니? 시게오가 꺼내놓은 고급 과자를 슬쩍 레이겐 쪽으로 밀며 묻자, 레이겐이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과자를 하나 입에 물고 네. 작게 웅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안 보여요."
 "응. 지금은, 나도."

 사실 저급 악령 정도는 사무실 입구에 쳐놓은 시게오의 베리어를 넘어오지 못했지만, 시게오는 굳이 그것까지 말해주지는 않았다. 결국, 한동안은 시간이 될 때마다 그림자를 봤다는 장소에 함께 찾아가 원인을 알아보기로 하고 레이겐은 돌아갔다. 시게오는 문이 닫히며 아이가 보이지 않게 되자 제 핸드폰에 저장된 '아라타카'라는 번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게오, 너……."

 레이겐이 있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에쿠보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어째서 저 녀석이 여기에 있는 거지? 너는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거냐? 물론, 입을 여는 건 쉬웠으나 그 수많은 물음을 밖으로 꺼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시게오가 에쿠보. 하고 악령을 부르고는 조용히 하라는 듯이 검지를 세워 코끝에 가져다 댔다. 

 "이제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한숨처럼 내뱉어진 시게오의 참회에, 에쿠보는 결국 열었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03.

 중학교 졸업식이었다.
 마지막으로 검은 교복을 입는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켠에 와글와글 모여있는 한껏 차려입은 어른들 사이에서, 그 사람은 평소와 같은 회색 정장을 입고 서 있었다. 스승님. 반가운 마음에 그 앞으로 다가가자 그는 큰 손으로 시게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축하한다 말했다. 그리고는 오늘은 예약이 있어 같이 라멘 먹으러 가기는 힘들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차피 시게오는 이 이후에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고, 레이겐도 이를 알고 한 농담이었겠지만, 이런 순간까지도 고기가 아닌 라멘을 입에 올리는 게 괜히 웃음이 나와서 시게오는 기쁜 맘으로 인사를 드렸다.

 다음에 뵐게요.

 레이겐은 제자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이유는 몰랐으나 시게오도 마주 보며 웃었다. 시게오가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레이겐이 대답했다. 그래. 이것이 사제의 마지막 대화였다.

 더 이상 입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검은 교복을 급하게 찾아 입고 향내 짙은 공간에 도착했을 때, 시게오는 울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 하얀 꽃에 둘러싸인 사진을 바라보았다. 많은 이들이 그 곁에 왔다가 떠났다. 시게오는 하얀 꽃과 검은 옷투성이인,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색채를 가진 그 얼굴을 바라봤다. 특별한 감상이 있지는 않았다. 영정 사진은 홈페이지에 있던 사진을 썼구나, 정도의 생각을 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 옆에 앉아있던 동생을 먼저 돌려보내고, 조금 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눈물을 쏟아내는 토메를 달래고, 그렇게 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위로받는 동안. 시게오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유일하게 이 세상에 두고 간 그의 몸은 화염 속에서 가루가 되어 돌아왔다. 조미시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에 산다던 레이겐의 가족들은 어째서인지 조미시에 그를 묻었다. 그리고 시게오에게 영등등사무소 열쇠를 넘겼다. '유품'을 정리하기 전에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가져가도 괜찮다는 말과 함께.

 잠겨있는 문을 열고 들어간 사무소는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시게오는 벽 한쪽에 있는 게시판으로 다가가, 사진 한 장을 찾아 떼어냈다. 그 안에 있는 자신과 남자의 모습을 잠깐 눈에 담았다가, 고개를 돌려 비어있는 자리를 한 번 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함께 와놓고 뒤쪽에 서 있기만 하던 세리자와가 당황하며 다가오자, 시게오는 드디어 실감이 난 것처럼 울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목 놓아 울었다.

 "사라지는 게 싫어요. 여기도, 스승님도."

 울음 속에 섞인 시게오의 말에 세리자와가 조심스럽게 어깨를 두드렸다.
 안녕히 가시라 했으나 그렇게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라 한 것은 아니었는데. 홀로 맘을 정리하고. 홀로 인사를 나누고. 남은 자들에게 아무런 욕심도 없었던 것인지 영혼의 작은 조각조차 남기지 않고 그렇게.
 이별이었다.

 


 04.

 에쿠보는 생각했다. 정상은 아니야.
 십여 년을 시게오의 옆에서 보낸 악령의 감이었지만, 시게오는 요 몇년간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넌지시 무얼 찾느냐 물으면 딱히 찾는 건 없어, 에쿠보. 하는 덤덤한 대답만 돌아왔지만. 그가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꾹 눌러 담아 없애려던 어린 시절의 감정인지, 그립고 그리운 사람인지, 아니면 전부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라타카. 거긴 위험해."
 "괜찮아요. 와봤던 곳이니까."

 그것을 이런 식으로 알려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조차 몰랐다. 전생과 같은 육체에 같은 영혼? 거기다가 이름까지 그대로 가지고 태어났다고? 신이 장난이라도 치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그래. '신'의 장난이 아니라면. 저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을 거라고.

 "이런 폐건물에 와봤다고?"
 "딱 한 번이요. 그 유령이 들어가는 걸 봐서."
 "다음부터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요? 위험하니까? 알았다니까요. 의외로 잔소리가 많으시네."

 에쿠보가 보기에도 과보호였다. 정작 시게오가 저 나이였을 때는 더 위험한 곳에도 가지 않았던가. 그에 비하면 이런 악령 조무래기조차 없는 폐건물은 '작은 레이겐'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에쿠보가 그것을 말로 지적하거나 빈정거리지 않은 건 인간이 너무나도 약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더욱더.

 "어때요?"

 폐건물의 2층으로 올라 온 시게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레이겐이 포옥 한숨을 내쉰다. 이번에도 없었다는 의미다. 다섯 번째 실패였다. 사흘 째 레이겐이 보인다던 유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레이겐은 이쯤 되니 자신이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안절부절한 기분이 되었으나 정작 시게오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레이겐은 그 유령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유령'이 무엇인지 시게오는 점점 눈치채고 있었다.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다녀온 곳은 전부 익숙한 곳이었다. 레이겐에겐 보이지 않았으나 항상 옆에 떠다니던 에쿠보도 이쯤 되면 그 유령의 정체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같은 장소에서 두 번 이상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야 했다.

 "아라타카, 같이 갔으면 하는 곳이 있는데……."
 "좋아요."

 망설임 없는 대답에 시게오가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작은 레이겐, 아라타카는 의심이 많으면서도 사람을 쉽게 믿는 듯해서. 이를 좋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좀 더 주의를 줘야 할지 고민하는데 조금 전까지 투덜거림을 들었던 터라 결국은 하고 싶었던 말을 꾹 삼켰다. 건물에 쌓인 오래된 먼지가 날리면서 코를 간지럽히길래 우선 밖으로 나가자 하려는 순간, 레이겐의 발밑으로 검은색 무언가가 사사삭 지나간다. 레이겐이 그게 무엇인지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집어삼킨 레이겐이 펄쩍 뛰어올라 시게오의 뒤로 숨는다. 제 코트를 붙잡은 작은 손을 잠시 바라본 시게오가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레이겐의 어깨를 감싸고, 다른 한 손을 뻗어 초능력으로 그 벌레를 붙잡아 창밖으로 내보냈다.

 "아……."

 레이겐은 그제야 창피함이 몰려왔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시게오를 올려다본다. 레이겐이 붙잡았던 코트는 이미 손에서 놓았으나 어깨를 감싼 시게오의 손은 그대로다.

 "나갈까?"

 어째선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묻는 시게오를 보며, 레이겐은 차마 손을 떼 달라 말하지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05.

 레이겐 아라타카는 마음을 깨닫자마자 바로 접었다. 차마 예쁘게 접을 틈도 없이, 더는 접을 수 없도록 구깃구깃하게 접어 깊숙이 숨겨놓았다. 어쩌다 누군가가 발견하더라도 쓰레기인가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사실 이 마음은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쓰레기일 터였다.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14살이나 어린, 란도셀을 메고 찾아온 것이 첫 기억이었던 제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분명 그렇게 숨겼었는데. 최근 제자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눈치챈 레이겐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도 눈치챈 사람은 시게오 본인이 아닌 레이겐이었으며, 곧 시게오의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레이겐은 계획을 세웠다. 사무실을 이전하든 직장을 옮기든, 조미시를 떠나자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고등학생이 된 시게오는 바빠질 것이고, 레이겐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돼도 자주 찾아오기는 어려울 터였다. 애초에 갑작스럽게 불러내지 말라는 말이 습관처럼 입에 달라붙은 녀석이니 굳이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이어진 생각에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었으나, 레이겐은 자조적인 웃음을 입에 머금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집에 있는 짐들을 정리하는 것은 쉬웠으나 사무소 안은 손대지 못했다. 세리자와에게는 한 달 전부터 사무실을 뺄 거라 미리 말을 해뒀지만, 레이겐 스스로가 정리할 마음을 먹지 못했던 탓이다. 정말 우습게도. 한참을 생활했던 좁은 멘션 방 안에는 그 어떤 추억도 남아있지 않았는데, 5년조차 되지 않은, 아니, 심지어 사무소가 불에 타 옮긴 뒤로는 1년도 되지 않은 이 장소에 쌓인 추억이 훨씬 많았기에.
 언제나처럼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아 책상에 턱을 괴고 사무소를 둘러보았다. 접수대라 적힌 시게오의 책상이 제일 처음 눈에 들어왔다. 시게오와 함께 마주 보고 앉아 타코야끼를 나눠 먹었던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시게오와 함께 찍었으나 어쩐지 민망스러워진 기분에 다른 손님 사진들 뒤쪽으로 슬그머니 끼워 넣었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눈에 담길 것이 너무 많아 레이겐은 눈을 감았다. 

 "다음에 뵐게요."

 시게오의 졸업식, 어쩐지 그리운 학교 앞에서 시게오가 건넨 인사에 레이겐은 차마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어 그냥 미소지었다. 습관처럼 뱉으려던 거짓말을 오늘만큼은 목 뒤로 삼켰다. 시게오가 고개를 조금 갸우뚱하더니 따라 미소짓는다. 안녕히 가세요. 여기에는 대답할 수 있었다. 그래.

 결론부터 말하자면 죽을 생각은 없었다.
 내일부터는 정말 사무소를 정리해야 했다. 그러자 어쩐지 잊고 있던 담배 냄새가 생각나 근처 편의점에 들러 한 갑을 샀다. 한 번도 올라가보지 않았던 건물 옥상에 올라가 불을 붙여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가, 덤덤한 표정으로 매캐한 연기를 뱉어냈다. 허리 아래밖에 오지 않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는데, 아래쪽에서 아기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구슬프게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레이겐이 허리를 길게 빼 난간 아래를 바라봤고, 바람이 불었다. 손에 들린 담배가 바람에 날려 아래로 떨어졌다. 그에 놀라 저도 모르게 손을 뻗으며 몸을 돌리는데 발을 헛디디어 휘청거렸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인가.
 레이겐은 저보다 먼저 떨어져 버린 담배와 흩어지던 담배 연기를 떠올렸다. 그 이상의 생각을 이어갈 수 없어서 레이겐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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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레이] Pumkin Time  (0) 2019.05.20

 10년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애인인 서점오소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꽃집카라와, 어느날 그의 앞에 나타난 서점오소를 꼭 닮은 붉은 머리의 소년 OSO...로 시작되는 오소카라를 보고싶다.

 카라마츠는 이제 막 32살, OSO는 22살 정도일까. 우연히 본 잡지에 실린 밴드 그룹. 그중에서 딱 서점오소가 죽었던 그 나이의, 그와 닮은 얼굴을 한 청년의 사진을 카라마츠는 한참이나 바라보았겠지. 물론 지금 22살이라면 환생일리 없지만, 그래도 뭔가 그리워서. 그렇게 점점 OSO의 팬이 되어가고. 물론 그렇다고 공연을 직접 보러가는건 아니고. 그냥 잡지를 산다든가, 노래를 자주 듣는 정도. 꽃집에 어울리지 않게 밴드노래 틀어놓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 한번씩 힐끗 가게 쳐다보고 가겠지. 사실 이건 OSO의 그룹이 꽤 유명하기도 한 탓임.


 어느새 그런 생활이 익숙해져서 처음의 그리운 기분을 잊고있을즈음, 썬글라스를 낀 붉은 머리의 남자가 꽃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을거야. 노래가 나오는 곳을 찾는 듯이 고개를 두리번 거리다가,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덧니를 보이며 웃어버렸지. 그 미소를 보자마자 벌떡 튀어나간 카라마츠가 그 남자의 팔목을 붙잡은건 순식간이었고. 어쩔 수 없었는걸. 그 미소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애인의 미소와 눈물이 날 정도로 닮아있었으니까.

 아무말도 없이 입을 달싹이며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는 카라마츠에 당황한건 OSO였겠지. 그도 그럴것이 그는 그냥 지나가던 길에 자기 노래가 들려서 오, 했을 뿐이고. 주인과 눈을 마주쳐버려서 평소의 팬서비스처럼 웃었을뿐인데. 하지만 당황도 잠시뿐. 그저 열정적인 팬이 가수를 만나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거라고 생각한 OSO는 울지는 마시구요-하면서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음.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듯한 카라마츠가 급히 눈물을 훔치며 미, 미안하다. 내가 아는 누구랑 많이 닮아서...하는데 OSO가 아, 그거 나 맞는거 같은데? 해버렸겠지. 물론 OSO 내가 아는 누구=내가 좋아하는 가수로 해석해서 그런거고, 당연히 카라마츠가 말한 누구는 서점오소였음. 그래서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OSO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곧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OSO가 안녕하세요, 카리스마 레전드 인간국보 보컬 OSO임다~ 인사하자 카라마츠는 다른 의미로 응? 하다가 하????하고 소리질렀음....이게 바로 OSO꽃집의 첫만남이엇다구 합니다..

 이 뒤로 여자저차 인연이 생겨 OSO가 자주 놀러오게 됐는데, 골수팬이라고 생각했던 카라마츠가 의외로 자신에게 큰 흥미가 없다는걸 알게된 OSO는 이상한 오기가 생겨서 올때마다 자기피알 하기 시작함. 그중에서 제일 자주 꺼내는 말은 공연을 보러 와보라는 거였는데, 카라마츠는 카라마츠 나름대로 소신(?)이 있어서 가지 않았음. 왜냐면 OSO를 좋아한다기보다, 여전히 OSO에게서 서점오소의 모습을 찾고있었을 뿐이니까. 이런 맘으로 공연을 보러 간다거나 OSO와 친해지는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은근히 선을 그엇겠지.
 그래도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건 사실이라, 어리기도 하고, 동생을 아끼는 맘으로만 대하겠다고 마음먹었지. 물론 그동안 OSO는 카라마츠에게 점점 반하고 있었음. 이따금씩 자기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볼때마다 가슴이 설레었으니까. 카라마츠가 무슨 생각으로 OSO를 보는지도 모르고.

 자기 맘을 깨달은 OSO의 행동력은 빨랐음. 어느날 꽃을 다듬는 카라마츠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OSO는 가벼운 말투로 좋아해, 카라마츠씨. 뱉었을거야. 우습게도 정적속에 들려오는건 카라마츠가 가게에 틀어놓은 OSO의 노랫소리뿐. 멈춰버린 손을 내리고 작게 숨을 뱉은 카라마츠가 겨우, 고맙다고 웃어보이며 그의 고백을 돌려 거절했지만, OSO는 카라마츠의 붉어진 귓바퀴를 보고말았을거야. 난 포기 안 할거야. 다짐하듯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카라마츠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OSO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는듯이 언제나처럼 씨익 웃을뿐.

 그뒤로 OSO의 작업(?)은 점점 뻔뻔해졌겠지. 평소보다도 가까워진 거리, 숨쉬듯 좋아한다 말하는 OSO의 모습을 보며 젊음이란 대단하네...하고 감탄해버린 카라마츠. 물론...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임. 그가 좋아한다 말할때마다 점점 무너지는 벽을 느끼고 있었음. 하지만 이 마음이 서점오소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정말로 OSO가 좋아진건지 확실히 말할 수 없었기에 카라마츠는 항상 OSO를 밀어냈겠지. 여전히 OSO가 건네는 공연 티켓을 거절하고. OSO의 고백을 웃음으로 흘려보내면서.

 그리고 어느날, 꽃집을 찾아간 OSO가 본 건 임시 휴업 팻말과 불이 꺼져 어두운 가게. 어디 아프기라도 한건가? 걱정되는 마음에 핸드폰을 켜는 순간,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오소마츠 형...? 하고 불렀지. 본명으로 불린건 오랜만이라 어쩐지 어색한 느낌으로 뒤를 돌아보면 모르는 남자가.
 그날은 서점오소, 즉 오소마츠의 기일이었어. 카라마츠는 매년 그랬듯 오소마츠가 있는 곳으로 갔고, 카라마츠의 꽃집을 찾아온건 서점꽃집의 친구였던 이치마츠였겠지...이치마츠 역시 OSO를  서점오소와 겹쳐보고 그렇게 OSO를 불러세웠고, 이내 다른 사람이라는걸 깨닫고 다시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갔음. OSO가 누구?하고 묻자 이치마츠는 아니, 아무것도 아님다.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OSO가 하지만 방금 내 이름 불렀지? 형이라고 했지? 하고 따지듯 묻자 이치마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거야.

 당신 이름도...오소마츠라고?

 당신 이름'도'? OSO가 의문을 느꼈을거야. 심지어 이치마츠가 이어서 카라마츠랑 아는사이?하고 물어봤으니 얘기를 나눠볼수밖에. 그렇게 이치마츠에게 자초지종을 다 들은 OSO는....카라마츠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조용히 돌아갔을뿐.

 연예인이다보니 그렇게 자주 오는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1주일에 한번은 꼭 꽃집에 얼굴을 내밀던 OSO였는데. 거의 이주가 지나도록 오지 않는건 물론이고, 문자나 전화조차 하지 않았음. 카라마츠가 이상하게 여기며 조금 쓸쓸함을 느끼고 있을즈음 꽃집으로 우편 하나가 도착했지. 편지지 안에 들어있는건 그 어떠한 말도 아닌 다음주에 있을 OSO의 공연 티켓한장. 아무말도 없이 이렇게 티켓만 보낸건 또 처음이라 카라마츠는 차마 돌려보내지도 못하고, 고민에 빠졌겠지...솔직히 OSO가 보고 싶어진건 맞지만, 이렇게 가도 괜찮은걸까 하는 마음에. 물론 그뒤에 이치마츠가 찾아와 카라마츠의 정신을 더 어지럽게 만든건 당연한 일. OSO가 카라마츠의 옛 일을 알게됐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느낀 감정은 공포였음. 이대로 다시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까봐. 더이상 자신에게 웃으며 좋아한다 말해주지 않을까봐. 그리고 결국은 깨달아버린 감정. OSO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보고 싶어. 나는 그를....
 카라마츠는 서랍에 넣어뒀던 티켓을 꺼냈지. 어쩌면 이것은 OSO가 주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OSO가 내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기회.

 처음으로 본 무대에서의 그는 너무나도 눈부셨고, 어쩐지 공연도중 눈을 마주친것도 같았음.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공연이 종료되었을 때, 카라마츠는 조심스럽게 무대 뒤쪽 대기실로 향했지. OSO가 미리 말해둔건지는 몰라도 걱정과는 달리 카라마츠를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어. 대기실에서, 어느새 그리워진 붉은 머리를 보는 순간 카라마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멈춰섰지. 어째서인지 평소와는 다른 무덤덤한 표정으로 왔네. 라고 OSO 짧게 내뱉자 그제서야 카라마츠는 허둥지둥 챙겨온 꽃다발을 내밀었을거야. 

 오소마츠, 하도 자주 봐서 이런 꽃다발이 지겨울지 모르겠지만...

 ...지겹지 않아.

 카라마츠씨가 주는거니까. 그렇게 꽃다발을 받아드는 OSO를 보며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안심해버렸고, 동시에 눈물을 글썽거렸지. 물론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OSO가 진짜 울고싶은 사람은 난데. 중얼거리고 카라마츠는 조급해진 마음으로 허둥대며 말했어.

 오소마츠, 사실 널 좋아해. 정말로, 나..

 그거 정말로 나?

 퍼뜩 카라마츠가 OSO의 얼굴을 바라보면, 그는 울고 싶다던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는 것처럼, 슬픈 표정을 짓고있었겠지.

 알고 있었어. 카라마츠씨가 날 좋아한다는거. 아니까 그렇게한거야. 카라마츠씨의 표정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었을걸. 근데...자신이 없어져버렸어. 정말 그 표정은, 나를 향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어쩌면 카라마츠씨는 사실 아직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오소마츠는 너다!

 어느새 눈물 범벅이 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으며 외쳤지.

 보고 싶었는걸. 무서웠는걸. 늦게 알아버렸단 말이다. 내가, 오소마츠를 좋아한다고. 나도 너무 늦게...아이처럼 울먹이며 외치는 카라마츠의 고백에, 오소마츠는 결국 그를 끌어안을수밖에 없었지. 다행이다. 정말...정말...중얼거리는 오소마츠의 목소리를 들으며 카라마츠도 그를 마주안았을거야.

 오소마츠, 한번만 더 말해주지 않겠나. 그....나를, 좋아한다고....

 좋아해 카라마츠씨. 정말, 좋아해.

 이 뒤로 OSO꽃집이 어떤 알콩달콩 연애를 했을지는 저도 모르겟습니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나타난 마법교사 오소마츠와 니트카라

 초여름날, 여느때처럼 다리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 강변에 쓰러져있는 남자를 발견한 카라마츠. 처음엔 시체라 생각해, 겁먹고 무시하려 했지만, 길쭉한 모자 안쪽으로 보이는 얼굴이 제 형과 똑같아서 오소마츠?하고 말을 걸어버렸겠지...죽은건 아니었는지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남자가 퍼뜩 고개들고 카라마츠?하고 놀란눈을 했음...결과적으로 서로가 착각했을 뿐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마츠노가 거실에 앉아 찬물 들이켜는 마교오소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 카라마츠..마교오소가 말하길 그는 다른 세계의 육쌍둥이이며, 그의 진짜 동생이자 드래곤 연구가인 카라마츠가 크게 다쳐 그 치료제를 찾기위해 온거라 했지.

...오소마츠 치고는 꽤나 상세한 딜리버리콩트구나.

 물론 카라마츠는 믿지 않았음. 결국 마교오소가 이런저런 마법도 보여주고 진짜 오소마츠가 집에 돌아와 비명지른 뒤에야 그의 말을 믿었을거야.
 마교오소가 찾는건 한여름에 피어난다는 태양을 닮은 황금꽃이라 했음. 물론 카라마츠는 그게 뭔지 알 수 없었고. 급격히 귀찮아졌지만, 성격마저 장남과 닮은 남자가 도와달라 떼쓰는게 더 귀찮은 일이었기에, 어차피 할 일 없던 카라마츠가 함께 꽃을 찾아주기로 했지.

 마교오소는 니트오소와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라, 성격은 같았지만,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만큼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매일 같이 다니며 그런 그를 사랑해버린 카라마츠...헤어짐이 아쉬워져버렸는데.
 다친 동생-다른 세계의 카라마츠는 그의 시간만 마법으로 멈춰진 채. 다른 형제들은 오소마츠가 치료제의 재료를 찾아 돌아오길 기다린다 했지. 종종 조급해하며 '카라마츠'를 걱정하는 마교 오소를 보며, 그러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부러워해버린 니트카라.

 토도마츠가 '태양을 닮은 황금꽃이면 해바라기 아냐?'라고 말해준 덕분에 재료가 무엇인지 알게됐지만, 마교오소와 카라마츠가 찾아낸 해바라기밭의 꽃이 만개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음. 어쩌다보니 카라마츠에게 주어진 사랑의 유예기간. 때마침 마교오소는 보답으로 소원하나를 들어준다했지. 여러가지를 생각해본 카라마츠가 결국 마교오소에게 부탁한건, 여름축제에 함께 가달라는 것. 카라마츠는 다른것보다도 그와 함께하는 추억을 가지기로 마음먹었고, 마교오소는 그런 소원이라면 쉽다며 승낙했음. 여름축제의 기간은 딱 해바라기가 만개할 것 같은 한여름.

 오소마츠도 카라마츠도. 축제날만큼은 다른걸 잊은것처럼 즐거워했지. 날이 저물고, 어느새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해바라기가 피어난 곳으로 와있었어. 방금전까지 시끄러웠던 분위기는 거짓말이었던것처럼 고요한 공간. 처음만난 그날과 같은 모습을 한 남자를 보며 카라마츠가 입을열었지.

 좋아해, 오소마츠.

 그가 고백하는 순간 마법처럼 시작된 축제를 장식하는 불꽃놀이. 오소마츠의 표정은 모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가만히 카라마츠의 손를 붙잡았어. 직감적으로 이별이 다가옴을 느낀 카라마츠는 불꽃놀이가 끝나지 않기를 빌었지.
 그러나 시간은 흐르는 법. 마지막으로 쏘아올라 피어난 불꽃이 흩어지는 순간, 그의 귓가를 스치는 소리.

 잘있어, 카라마츠.

 어둠이 찾아오고 카라마츠가 옆을 보았을때, 그는 정말 꿈처럼 사라져버렸어.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흐르고. 형제들과 함께 찾아온 여름축제.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넋을 놓고 있으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았지.

 "동생 좀 살리느라 늦어버렸는데. 아직 고백은 유효하지?"

 그렇게 물어본건 누구였을까. 검은 망토로 카라마츠를 감싸안은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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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생은 아니지만 거의 몇 백년을 살아가는 마법 선생 오소마츠는 늙지 않는 모습으로 마법 학교에 붙어 사는데...그 스스로 죽을 때를 알 수 있고, 오래 산 만큼 죽는걸 두려워 한다거나 미련이 있다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수명이 5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학교를 떠날까 고민하는데, 교장의 마지막 부탁으로 그 해 입학생중에 마법소녀로 뽑힌 카라마츠 교육을 맡게 됐으면. 나이 세는 걸 잊을 만큼 오래 산 오소마츠에게 '소년'인 마법 소녀는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학생이었을거야.

 오소마츠는 평소처럼 수업을 했겠지. 5년 뒤에 죽는다고 해서 너무 정을 주지 않는것도 아니었고. 언제나처럼 장난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있었을거야. 그 모습에 카라마츠는 반해버리고...오소마츠가 첫사랑이었던 카라마츠는 제 감정을 숨기는 방법도 몰라서 온몸으로 오소마츠를 향한 사랑을 표현했으면. 하지만, 오소마츠는 나이 차이도 나이 차이고,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걸 알고 있었던 만큼, 카라마츠의 감정을 눈치챘음에도 모르는 척 했겠지. 제자로서의 애정은 주지만, 그 이상은 일부러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오소마츠와, 거기에 상처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카라마츠...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정을 안 주려 노력해도 3년동안 끊임없이 열정적인 사랑을 받다보면, 어쩔 수 없이 오소마츠에게도 사랑 비슷한 감정이 생기겠지. 하지만 2년만 참자는 마음으로, 겉으로는 평소처럼 대하고.

 그런데 카라마츠가 2년뒤 자신이 사랑하는 선생님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교장과 오소마츠의 말을 우연히 엿듣던가 해서...그 뒤로 오소마츠에게 기회만 생기면 고백하는 카라마츠. 선생님, 좋아한다. 사랑한다 티쳐. 그의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건 알지만, 그 전까진 옆에 있고 싶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신을 원망하기도 했을거야. 왜 하필이면, 오소마츠가 살아 온 그 오랜 시간동안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걸까 하면서.
 그러나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겠지. 죽음을 겁내고 싶지 않았고, 상처 받고 싶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에 우는 건 카라마츠라는 걸 알고있었으니까. 그런데 결국 오소마츠를 껴안고 못생긴 얼굴로 오열하면서 옆에 있고 싶다, 상처 받아도 좋으니 함께 하고 싶다. 정말 좋아한다 외치는 카라마츠의 애절한 고백을...오소마츠는 거절하지 못하고. 깊은 숲속의 작은 오두막 집에서 카라마츠와 함께 마지막 1년을 보내기로 했으면.

 곧 죽는다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행복한 1년이었을거야. 몸이 점점 약해져서 침대에만 있게된 오소마츠의 옆엔, 언제나처럼 밝게 떠드는 카라마츠가 있었을테니까. 그렇게, 마지막 날.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고, 작은 입맞춤을 한 오소마츠가 말하겠지.

 이별이야,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눈물을 꾹 참고, 겨우겨우 웃어보였으면. 선생님은, 행복했는가? 하고 물으면서. 오소마츠는 언제나처럼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최고의 인생이었어! 외칠거야.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라마츠에게 깊은 키스를 한 오소마츠는,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았지.
 눈을 감기 전 오소마츠는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했어. 부디, 다음생엔 저 녀석의 옆에 오래오래 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카라마츠는 오소마츠 덕분인지, 대단한 마법소녀가 되었고, 예전의 오소마츠처럼, 오소마츠가 살았던 그 학교에서, 오소마츠를 그리워하며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선생님으로 지내게 될거야. 그리고 어느 해에 수석으로 입학한 한 아이를 맡게 되는데, 그아이의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된 카라마츠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으면.
 신이, 오소마츠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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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 일본 신화풍 오소카라가 보고 싶다...대대로 내려오는 주술사 가문의 차기 가주 오소마츠와, 지금은 메말라버린 강의 신이었던 카라마츠로....

 

 




 모두가 잠든 새벽, 툇마루와 이어진 문 가까이에 등을 기대고 앉으면, 잠들지 못한 벌레들의 울음소리 사이로 맑은 강물 소리가 들려오곤했다. 조금 더 어렸을적에는 복도를 지나다니던 누군가의 옷자락을 붙잡고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데려다달라 했던거 같지만, 그런 오소마츠의 부탁을 들은 이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어른들이 어린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그의 어깨를 붙잡은 손이 떨려오던 감각만은 기억에 남았다.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 한 것인가.

 메마른 강물이 100년이 지나도록 차오르지 않았다는걸 오소마츠가 알게된 건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다.

 물이 귀했던 시절, 강물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주술사 가문은 강의 신을 붙잡아 깊숙한 곳에 가둬두었다. 욕심으로 저지른 일은 곧 두려움이 되었고. 신이 풀려나는 순간 그들에게 내릴 벌이 무서워 그들은 신을 숨겼다. 강물이 메마르는 동안에도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신은 잊혀졌고. 강의 신을 지하 깊숙이 숨긴 이들은, 차마 신이 있는 곳에 찾아 가지도 못했다. 보이지 않는 강물 소리가 들리면, 신이 분노하여 자신들을 물에 잠겨 죽게 만드는것은 아닌지 겁에 질렸다.
 그러나 신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강물을 차오르게 할 힘이 사라진 것에 슬퍼하긴 했어도. 그를 찾아오는 이 하나 없어 외롭기는 했어도.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 살아 숨쉬는 이들을 사랑했다. 때문에 미워할 수 없었다.

 100년이라는 세월은 그에게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어쩌다 저를 발견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때 가슴 깊숙한 곳에서 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오소마츠라 자신을 소개한 아이는 신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이름이 없다는 그에게 카라마츠라는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했다. 몇 천년 만에 가져본 이름을 신은, 카라마츠는 몇번이고 되뇌었다. 아주 소중한 보물을 얻은 표정으로. 그에게 이름을 준 아이가 카라마츠는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신을 봉인한 자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 오소마츠.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카라마츠를 찾아왔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카라마츠를 구속한 힘을 풀고 싶었지만, 아직 덜 자란 그는 힘이 부족했다. 카라마츠는 저를 찾아와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했다.
 무언가가 억울해진 오소마츠가, 인간이 밉지 않아? 라고 물었지만

 아니, 여전히 인간은 사랑스럽구나.

 하며 카라마츠는 진실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반대로 오소마츠는 인상을 찡그렸다. 공평하게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오소마츠가 성인이 되던 해. 보름 뒤에 있을 그의 생일은, 그가 정식 가주가 되는 날이기도 했다. 오소마츠는 그 날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가주가 되는 순간, 선대의 힘들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카라마츠를 아래에서 꺼내올 수 있었다. 둘이서만 함께하던 시간도 좋았으나,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자유를 돌려주고 싶었다. 감옥은 아니었으나 감옥과도 비슷했던 어두운 밑바닥과 다른, 새파란 하늘을 함께 보고 싶었다. 카라마츠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강물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그의 옆에 항상 함께하고 싶었다.
 오소마츠의 뜻을 알아챈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카라마츠를 찾아갔다. 공포가 공포를 이겼다. 공포를 짊어진 이들은 신을 해했다. 오랜 시간 봉인되어있던 신은 그들에게 상처 입을 만큼 나약했지만, 그들을 상처 입힐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겁에 질린 얼굴로 눈물 흘리며 손을 드는 이들을 차마, 차마 미워하지 못했다. 신이 사랑하는,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는 인간이었고, 신을 사랑한 이도 인간이었다. 

 의식이 희미해져가던 와중에, 카라마츠는 빛을 보았다. 붉은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빛의 가운데에 서있었다. 오소마츠가 손을 뻗었다. 카라마츠의 발목을 묶어놓은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가자, 카라마츠.

메마른 강물이 차올랐다. 신의 푸른 기모노 자락이 흩날렸다.

 불행체질의 히라카라와 그런 카라마츠를 수호하게 돼버린 악마오소가 보고 싶다. 사실 그건 카라마츠가 블랙기업에 취직하기 전, 어쩌다 인터넷에서 보게된 악마 소환 주문을 따라 읽었다가 벌어진 일이었지. 카라마츠의 중얼거림이 끝남과 동시에 악마 하나가 허공에 나타났을거야.

 날 소환한 인간은 오랜만이네.

 사실, 주문을 외운다고 다 소환할 수 있는게 아니라 운 또는 어느정도의 맞는 파장이 있어야 가능한거였기에, 악마-오소마츠는 생각보다 즐거운 기분이었지. 나름 선의를 베풀어, 앞에 있는 이 남자가 원망하는 자를 저주해주거나 복수를 도와주려 했어.
 문제는 오소마츠를 불러낸건 정말 운 덕분이었는지 카라마츠에게 악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거지만.

 오소마츠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카라마츠는 대꾸가 없었어. 아니, 오소마츠를 쳐다보지도 않았지. 그냥 인터넷의 어느 장난 정도로 생각한 카라마츠는 금방 제가 그 주문을 중얼거렸다는 것도 잊어버렸어.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었지만, 악마는 기분이 상했지. 대단한 놈인줄 알았더니 아니었잖아?
 그래서 오소마츠는, 진짜 작은 장난만 치려고했어. 정말로. 그냥 문을 열다가 모서리에 발가락이 찍히는 정도의 저주-였을텐데. 오소마츠가 조절하지 못한건지, 아니면 애초에 카라마츠에게 문제가 있던건지. 가벼운 저주 정도가 아니라, 카라마츠는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불행체질이 돼버렸어. 악마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지. 한 번 건 저주는 되돌릴 수 없었고, 그렇다고 그냥 냅둘수도 없었거든. 오소마츠는, 악마는, 샘의 여신에게 약점을 잡혀 인간을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으니까. 이 인간이 저주로 인해 죽게 된다면, 악마는 그 순간부터 다시는 인간 세계에 내려올수 없게 되겠지.
 악마가 처음 생각했던것처럼 카라마츠가 문에 발가락을 찧는다면 저주는 풀리게 되어있었어. 그래서 그 전까지만,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죽지 않도록 돕기로 했지. 이정도의 불행체질이면, 그정도 일은 매일같이 일어날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설마 2년동안 이 저주가 유지될줄은 몰랐지만.


 카라마츠가 붙은 회사는 블랙회사. 점점 빠져가는 볼살. 그의 앞에서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건 다반사. 공사장 앞만 지나가면 바로 앞으로 떨어지는 자재들. 야근하는동안 불이 난 아파트.
 카라마츠가 이어지는 불행에 의문을 느끼지 않은건 아니었으나, 점점 체력이 없어 고민하는 것조차 피곤하기도 했고. 자칫하면 죽을 것 같은 불행이지만 정작 크게 다친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결국 운이 좀 안좋은가보네, 하고 넘겼지. 그 모든 불행에서 카라마츠를 구해주는 악마를 여전히 보지 못한 채.

 어이, 카라마츠~ 젤리 말고 다른 것 좀 먹으라구. 편의점 도시락이라도. 아니면 너 진짜 죽는다?

 습관적으로 내뱉는 악마의 말 역시 카라마츠에겐 닿지 않았지. 2년동안, 악마도 꽤 많은 부분에 지쳐있었어. 그냥 인간계 오지 말까. 평생 마계에서 살아버릴까, 생각할정도로. 그래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이라도 든건지. 정말로 그의 곁을 떠나진 않았지.
 죽은 눈빛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카라마츠의 옆에 둥둥 떠있던 악마는, 털썩 하는 소리에 카라마츠를 내려다봤지. 한계였던걸까. 기절한 그를 보며 내심 죽은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비슷한 표정으로 컴퓨터를 들여다보던 옆자리 직원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지. 직원은 당연히 악마를 보지 못했고, 대신 옆자리에 쓰러져있는 카라마츠를 보며 자연스럽게 119를 부르고는 다시 제 일에 집중했어. 구급대원이 와서 카라마츠를 데려가는 순간에도 힐끗 쳐다보기만 하고 마는 회사 사람들을 보며, 오소마츠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카라마츠의 옆을 지켰지.

 카라마츠가 깨어난 건 그 후로 3시간 뒤. 역시나 과로, 영양부족, 수면부족으로 인한 일이었어. 오소마츠는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네. 중얼거렸어. 멍한 표정을 짓던 카라마츠의 입이 열렸지.

누구?

처음으로, 카라마츠가 그의 수호 악마, 오소마츠를 본 순간이었어.

 전생의 기억(육쌍둥이 니트 시절)을 갖고 있는 영어선생 카라마츠와 전생의 기억은 없지만 이번생에서도 카라마츠를 사랑하게 된 학생 오소마츠로 오소카라가 보고 싶습니다.
 카라마츠 꼬이고 꼬여서 이번생엔 오소마츠가 평범한 사랑을 하기 바랐는데, 매일같이 제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 오소마츠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오소마츠가 버릇없이 카라마츠라고 이름 불러도 혼내기는 커녕 옛 기억과 겹쳐져 심장 쿵했을것.
 오소마츠는 오소마츠 나름대로 카라마츠한테 관심 받고싶어서 공부도 해보고 땡땡이도 쳐보고 별 짓 다 하다 담배에 입댔으면 어떡하지...전생의 오소마츠랑 똑같은 브랜드 피고...담배 냄새 밴 교복 입고 교무실에서 혼자 졸고 있는 카라마츠 옆에 섰더니, 잠 덜깬 카라마츠가 오소마츠형?해버림 어카지
 오소마츠가 자길 좋아하는거 눈치챘지만, 모르는척 하고 있었는데. 기억 같은거 없으면서 또 다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오소마츠 보며 서러워진 카라마츠...결국 오소마츠가 좋아한다 고백하자 눈물 펑펑 쏟았겠지. 카라마츠가 우는 이유 모르는 오소마츠는 당황해서 카라마츠? 쌤?? 왜 울어? 허둥지둥 카라마츠 끌어안고 등 토닥이며 걱정하지마요 나 이제 졸업이구, 아! 앞으로 말썽 안부리고 얌전히 졸업할게! 이거 몰래카메라 같은거 아니니까, 생각나는대로 말하는데 카라마츠는 또 그게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더 울어버릴듯.

 




 나는 장형이 다른 동생들 모르게 자기들끼리 즉흥으로 새벽에 여행이나 드라이브 가는 걸 상상하면 너무 좋아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몸을 일으키면, 어째선지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덤덤히 나갈래?/나가겠나? 하며 조용히 파카로 갈아입고 집을 나서는 오소카라...운전을 누가할지는 가위바위보로 첫 사람을 정하고 그 뒤에는 서로 자리 바꿔가면서 운전할듯.
 정적이 흐르는 차 안도 좋고, 아니면 카라마츠가 오자키씨디 가져와서 틀어버리는것도 좋아. 오소마츠는 그 노래 질리지도 않냐구 타박하지만 딱히 노래를 끄지는 않고..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냥 그렇게 소소한 얘기 주고받으며 가다가, 인적드문 곳에서 별을 보며 감상에 젖기도 하고(주로 카라마츠가). 겨울이면 그렇게 첫눈을 함께 보기도 하고, 우연찮게 발견한 여관에서 온천에 들어갔다 나와 자기도 하고...물론 그렇게 하루 지나 집에 느즈막히 들어가면 형제들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아무도 없겠지. 그래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왠지 피곤하네~하며...일상이 연애인 오카가 좋아요.

 




 장남이 쌍방 짝사랑인거 눈치채고 고백하는데 카라마츠 단호하게 거절하는거 너무 좋음ㅋㅋㅋ당연히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너무 기쁜나머지 울먹이며 껴안길줄 알고 바로 호텔 직행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거절당해서 하??????? 소리만 지를듯. 왜 너도 나 좋아하잖아! 버럭 소리질렀는데 카라마츠 짜게 식은눈으로 쳐다보더니 한숨 내쉬고 논~논~오소마~츠? 사랑...러브! 이를 전달하는 방법은 이 하늘을 수놓는 별의 수만큼 많다제~? 하지만 방금 너의 말은~ 아 카라마츠어 힘들다 암튼 해석하면 고백이 맘에 안드니 못들은걸로 하겠다는거였음.
 그 뒤로 카라마츠한테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가며 고백하는데...솔직히 고백이랄까 그냥 저질스러운 말이 대부분일것 같구...ㅋㅋㅋ 그때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 쳐다보지도 않고 거절한다. 내뱉고 무시하겠지...그리고 그걸 보는 오소마츠에게 조언하는건 역시 우리의 톳티밖에 없겟지요.
 근친호모라니 정말 싫지만...쿠소장남의 저질스러운 고백 듣는것도 지겨우니까 상냥한 톳티가 주는 힌트~ 카라마츠 형의 평소 말투나 행동을 생각해보라구!
 스마트폰 두드리며 툭 내뱉는 톳티의 조언에 오소마츠는 뭐야 그게...뭐 진짜로 꽃다발 들고가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반지라도 줘야하는거? 사실 대충 카라마츠가 어떤걸 동경하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서로 좋아하는 마음만 있음 되는거 아냐? 뭐 고백 같지 않은 고백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거절당하기만 하면 형아도 마음아픈데요.....중얼중얼거리다가...결국 카라마츠가 기타치고 있을 2층에 올라간 오소마츠...퉁명스럽게 자. 하구 카라마츠한테 손내밀면 카라마츠는 고개 갸우뚱 거리다, 오소마츠가 응, 하고 다시한번 손 까닥거리니 이유도 모른채 제 손을 그 위에 올려두겠지. 그 손을 잠시 맞잡고 있던 오소마츠...입 몇번 달싹 거리더니 기어가는 목소리로 ....사랑해, 카라마츠. 중얼거렸으면 좋겠다. 호텔 가자거나 안고싶다거나 하던 다른 고백들과는 확실히 다른, 처음으로 오소마츠의 감정 그대로를 내보인 고백에 카라마츠가 슬며시 미소지으며 으응~? 잘 안들린다제~? 하면 오소마츠 시뻘개진 얼굴로 그러니까! 사랑한다고! 그제서야 카라마츠도 활짝 웃으며 오소마츠한테 폭 안겻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물론 그렇게 사귀자마자 바로 호테루 가려던 장남 머리에 혹이 생긴건 어쩔 수 없는일





 청춘고딩 오소카라 주세요.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학교 복도에서 이상하게 장형 둘이 같이 서있을땐 괜히 주변 소리 하나도 안들리는것 같고....별거 아닌데 오소마츠가 어깨에 팔만 둘러도 괜히 심장 두근거리는 카라마츠라든가. 그런거 있자나요 수업시간에 잠깐 오소마츠쪽 쳐다봤다가 턱괴고 졸고있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따스한 표정 되어버리고 선생님한테 걸린 오소마츠 꿀밤한대 먹는거 보면서 하하,웃음터트린 카라마츠와, 그런 카라마츠 표정을 투털거리던거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는 오소마츠라든가. 오소마츠는 귀가부고 카라마츠는 연극부라 같이 하교하는일이 드문데, 한겨울에 보충수업 끝난 오소마츠가 얼추 시간 비슷하겠다 싶어서 카라마츠 기다려주고...단둘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먹었던 편의점으ㅣ 고기만두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맛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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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기 하나 들어보겠나? 저 숲속을 걸어가다보면 으리으리한 저택 하나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홀로 살던 주인은 살해당했지. 아, 그 범인을 찾아달라는 의뢰는 아니야. 이미 10년도 더 된 사건이니까. 중요한건 그 다음.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 했거든. 비어버린 저택으로, 당연하다는듯이 부랑자들과 도둑들이 하나 둘 찾아가기 시작했지만...들어간 자는 있어도 나오는 자가 없다는걸세. 미쳐버린 한 남자가 노래하듯 말하기로는, 글쎄 그 저택 주인의 유령이 나온다는거지. 오, 흥미가 조금 동했나? 그래, 그래서 자네에게 내가 말을 건 이유는―…


 과연 듣던대로 으리으리한 저택. 그 대문앞에 선 탐정 오소마츠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그 얘기는 들은 적도 없었던 것처럼. 달칵, 하고 쉽게 열린 문 안으로 조심할것도 없이 발을 내딛으면 10년의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정도로 깔끔한 홀이 그를 반기고. 화려한 샹들리에는 역시나 꺼져있었지만,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있어 그리 어둡지는 않았을거야. 호오, 호오. 고개를 끄덕이며 붉은 융단을 밟고 계단을 올라가니, 그 끝자락에 서있는 남자가 보였지. 어쩐지 하얀색 목욕 가운 차림을 하고 있는.

 그래, 정말 오랜만의 손님이군. 함께 차를 들겠나?

 당신이, 유령?

 으응~? 이런 퍼펙트한 모습을 한 가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  이 나의 새빨간 하-트는 여전히

 뭐?

 ―살아있다. 믿지 못하겠다면, 와서 심장 소리를 들려줄수도 있지.

 오소마츠가 계단을 마저 올라가면, 남자는 망설임 없이 오소마츠의 머리를 끌어당겨 제 왼쪽 가슴에 안았겠지.
 두근. 두근.
 일정하게 들려오는 심장소리에, 어쩐지 오소마츠는 안심해버리고. 왜 안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살아있네. 중얼거렸지.

 그 뒤로 가진 둘만의 티타임은, 어쩐지 조용하고, 어쩐지 즐거웠어. 해가 질 무렵, 흐릿한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던 남자-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자고 갈텐가? 물었지. 오소마츠가 고개를 저으며 돌아가겠다 말하자, 그는 말리지는 않았으나 조금은 슬픈 표정을 지었을거야. 그에 오소마츠는 저택 문을 나서기 전,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겼지. 그렇게 저택을 뒤로하고 산을 빠져나오며 오소마츠는 역시 그동안 저택에 들어갔다 나오지 못했다는 자들은 소문일 뿐인가, 했지.

 오소마츠가 그뒤로 몇 번 더 찾아갈때마다언제나 카라마츠는 혼자였고, 그러나 함께 즐거웠고,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카라마츠는 물었지. 자고 갈텐가? 그러나 오소마츠는 항상 괜찮다 답했어. 처음엔 그 대답에 실망한 표정을 짓던 카라마츠가, 최근들어 안심한 표정으로 바뀌어 조금 이상했지만.

 점점, 오소마츠는 좀 더 그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그렇게거의 매일 그의 저택에 찾아가기 시작했을 때 즈음, 자연스럽게 카라마츠가 자고갈텐가? 묻자 오소마츠는 처음으로 그럴까? 대답했지. 카라마츠가 들고 있던 찻잔이 바닥을 구르고, 어째, 어째서. 중얼거리는 그의 표정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듯 보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뿐.

그렇다면, 잠자리를 준비해두지.

 잠시 기다려줘. 그렇게 먼저 자리를 뜬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는 고개를 갸웃거렸어. 앞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으니까.

 카라마츠가 안내해준건 손님의 방,
이었으나. 어쩐지 옆에는 카라마츠가 함께 누웠지. 왜인지 묻자, 카라마츠 역시 글쎄, 왜일까. 중얼거릴 뿐. 흘러내린 가운 사이로 보이는 그의 살갗에 오소마츠가 침을 꿀꺽 삼키자, 카라마츠가 낮은 목소리로 오소마츠. 불렀어.

 날, 안아보겠나?

 카라마츠의 물음을 잠시 이해하지 못했던 오소마츠지만. 그의 눈빛을 본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입맞춤을 나누었지.

 …얼마나 긴 밤이었던가.
 나른한 기분으로 잠에 들었던 오소마츠는, 목이 타는 갈증에 일어났어. 옆에는 새하얀 몸을 드러낸 채 잠든 카라마츠가 있었고. 설핏 웃어버린 오소마츠가 대충 옆에 걸려있던 가운을 걸치고 복도로 나가면, 어쩐지 낮과는 다른 서늘한 기운이 그를 감쌌어. 이상하게 긴장한 몸. 그리고, 누군가가 따라오는듯한 느낌. 빨리 부엌에 다녀와야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넓은 홀에 도착하는 순간 누군가가 그를 덮쳤지.

 오소마츠!

 그의 위로 쓰러진건 아까까지 잠들어있던 카라마츠였어. 하지만, 그 말고 다른 인기척이 달아나는 소리를 들었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의 입가에 흐르는 피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으로 닦아냈어.

 …괜찮다. 익숙하니까.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다리를 베고 누워 이야기를 시작했지. 10년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죽은 카라마츠. 그리고 그 날 함께 죽은 사건의 범인. 매일 밤 반복되는 그날의 일. 그뒤로 밤마다 카라마츠 대신 죽어간 부랑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오소마츠. 기억나지 않는가? 10년전, 너는 이곳에 왔었지.  그땐 초보 탐정이었지만, 이렇게나 컸군. 

 왜인지 아련한 표정으로 말하는 카라마츠에, 오소마츠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어.

 네가 몇달전 이곳을 찾아온 날 느꼈다. 네가 마지막이라는걸. 그동안 이곳에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처럼, 나대신 네가 죽는다면. 그렇다면 이 길고 길었던 밤이 끝날거라고…. 그러나 널 사랑하고 말았다.

 이상하게 이 저택에 묵게 되면, 새벽마다 홀린것처럼 깨어나 나 대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연민을 느끼고 말 뿐이었으나, 오소마츠가 그렇게 죽게 둘 수는 없었다며. 자신을 안고 피곤한 몸으로 잠들면, 새벽에 깨어나지 않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았다고하지만 오소마츠는,

 카라마츠 대신 죽을 운명이었을 오소마츠. 그런 오소마츠 대신 다시 한 번 죽음을 받아들인 카라마츠.

 이제동이 트면 끝이구나. 나의 밤은 너무나 길었다. 길었지만, 어제는어젯밤만큼 행복했던 밤은 또 없었어.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고백을 들으며 그를 껴안았지. 등 뒤로 퍼져나가는 붉은 피를 바라보며, 그는 처음으로 고백했어.

 다음생에는, 살아서 만나.

 나, 결국엔 카라마츠가 죽은것밖에 못봤으니까 말이야. 희미하게 눈물 서린 목소리를 들으며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게 마지막이었지.

 사랑한다는 그의 마지막 고백을 들었을까.

 어느새 정신을 잃은 그가 일어났을땐 이미 아침이었지. 그동안 마치 꿈이라도 꾼 것처럼, 폐허가 되어버린 저택을 떠난 오소마츠.

 그들이 다시 만나는건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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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kin time : 꿈이 깨지고 냉혹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밤 12시에 마차가 호박으로 바뀌는 Cinderella 이야기에서). 
*18×32
*누군가가 한번쯤 연성 해봤을 것 같은 이야기






 01.

 세상은 조용했다. 하교 시간만 되면 북적거리던 시내 거리를 지날 때도, 유독 신호에 자주 걸리던 도로에 섰을 때도,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삐빅, 소리와 함께 신호등의 파란 불빛이 켜졌다. 방금 전 떠오르려던 생각을 잊은 채로 허둥지둥 길을 건너면―보였다. 익숙한 건물이. 조잡한 글씨체로 '영등등 상담소' 같은 수상쩍은 이름을 단 그곳이. 갑자기 두근거리는 심장에 가방끈을 부여잡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면, 다행히-다행인 건가?- 문 앞에 영업중이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여어, 모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처럼 데스크 의자에 앉아 귀찮다는 듯이 대충 손을 흔드는 남자가 있었다. 모브, 시게오는 저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뱉었다.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앉지그래."
 "아, 네."

 앉으라는 말에 시게오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책상으로 가 가방을 내려놨지만, 그의 스승이 일어나 소파로 다가가자 그 맞은편에 앉았다. 간이 테이블에는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차가 두 잔 놓여 있었다. 스승님이 타 놓으신 걸까. 시게오가 잠시 생각했지만, 정말로 궁금한 건 이게 아니었다.

 "스승님, 조미시가 너무 조용해요."
 "그래?"
 "오는 길에 아무도 없었어요."
 "아-, 다 같이 독감이라도 걸린 거 아냐? 요즘 유행이니까."
 "아뇨, 아무리 독감이어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없는 건 이상하죠. 공기가 이상해서 악령의 짓일까, 라는 생각도―."
 "그보다 모브."

 할 말이 있는거지?
 성의 없이 대답하던 스승, 레이겐은 시게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쑥 물었다. 할 말이라면 지금 하고 있잖아요. 라고 생각했지만, 시게오의 입은 달싹일 뿐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가만히 그런 시게오의 모습을 언제나의 무표정으로 지켜보던 레이겐이 그런가, 혼자 납득한 듯 중얼거리며 차를 들이켰다. 아직 뜨거울 텐데. 뜨거운 걸 마시지 못하는 그의 스승이 찻잔을 놓칠까 봐 시게오가 당장이라도 초능력을 쓸 것처럼 손을 들어올렸지만, 레이겐은 멀쩡한 모습으로 잔을 내려놓았다.

 "생각이 안 나?"
 "네?"
 "어쩔 수 없지."

 오늘의 레이겐은 평소와 달리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사실 '오늘'이라는 날이 무언가 이상한 걸지도 모른다.

 "슬슬 퇴근할 건데, 모브.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반쯤 강요와도 비슷한 그의 말에, 시게오는 거절할 생각도 못 하고 네…. 중얼거렸다.




 02.

 레이겐의 집으로 가는 길에도 두 사제를 제외한 사람은 볼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 오늘은 스승님의 집에서 자고 가겠다는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시게오는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레이겐은 그런 시게오에게 시답지 않은 말을 건네며 걸어갔다. 시게오는 저의 스승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자신에게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것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기에는 불안함에 속이 울렁거렸다.

 "들어와."

 그러고 보니, 스승님의 집에 온 건 처음이었다. 간단한 가구를 제외하면 특별할게 없는 방이었다. 어색하게 현관 앞에 서 있는 시게오를 손짓으로 부른 레이겐이 적당히 아무 데나 앉으라 말하며 정장 마이를 벗었다. 시게오가 머뭇거리며 작은 소파에 앉자, 레이겐은 옷장을 뒤적거리며 하얀색 티셔츠와 반바지를 꺼냈다. 대충 맞을 것 같은데. 씻고 이걸로 갈아 입어. 순식간에 옷을 건네받고 욕실로 떠밀린 시게오는, 잠시 손에 들린 것을 쳐다보다 주섬주섬 교복을 벗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된 18살의 시게오는 14살의 시게오와 달랐다. 꾸준한 운동 덕분에 근육도 붙었고, 4년동안 훌쩍 키가 커버려 저의 스승님과 눈높이가 맞게 되었다.
 덕분에 갈아입으라고 받은 옷은 레이겐의 예상처럼 '대충' 맞았다. 다른 사람의 옷을 입었다는 묘한 불편함을 제외하면 잠옷 대신으로 충분했다. 시게오가 교복을 팔에 걸고 욕실에서 나오면, 레이겐은 어느새 회색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걸터앉아있었다. 그는 욕실 문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제자, 모브에게 묻는다.

 "할 말이 있지?"

 아까와 같은 물음이다. 시게오는 여전히 어느 말도 할 수 없었다.
 마르지 않은 검은 머리칼을 타고 흘러 내려온 물방울이 바닥에 툭, 툭, 떨어졌다. 아아-작게 탄식한 레이겐이 몸을 일으키고는 시게오의 어깨에 걸려있던 수건을 들어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성의 없는 손길로 머리카락을 헤집는 그에 당황한 시게오가 허둥거리다 결국은 힘을 빼고 몸을 맡겼다.

 "감사…합니다."
 "음…그게 아니지."

 네? 얼빠진 시게오의 목소리는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턱을 매만지던 레이겐은 욕실로 들어갔다. 씻으시려는 거구나. 할 말은 뭐지. 남겨진 시게오가 축축해진 수건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시게오는 바로 코앞에 있는 스승의 얼굴을 보며 침을 삼켰다. 싱글 침대는 역시 남자 둘이 자기엔 비좁았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이 바닥에서 잘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스승은, 제자의 손을 붙잡아 당기고는 침대에 눕히며 자신도 옆에 누워버렸다. 내일은 어디 좀 가자. 통보에 가까운 말을 하며 레이겐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시게오가 눈을 끔뻑거렸지만, 눈앞의 남자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버렸다.
 역시 오늘 하루는 뭔가 이상해.
 시게오가 살짝 손을 뻗어 금빛 머리를 쓰다듬듯 허공을 휘저었다. 진짜로 쓰다듬을 용기는 없었다. 레이겐의 눈이 잠시 파르르 떨린 것도 같았지만, 스승님의 속눈썹은 금색이네, 따위를 생각하던 시게오는 눈치채지 못했다.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몸을 가까이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뿐이었다. 시게오가 슬쩍 스승의 허리를 감싸 안은 이유는. 순간 '할 말'이 생각날 것도 같았지만, 그는 허리를 껴안은 채 그대로 잠들었다.




 03.

 멘션을 나선 두 사제의 차림은 어제와, 아니, 평소와 같았다. 회색 정장과 검은 교복 차림. 레이겐은 시게오에게 '어디' 좀 가자는 말만 했을 뿐 그곳이 어디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시게오는 이쯤 되니 스승님께 무슨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더 묻지 않았다. 지하철 개찰구로 향하는 그에게 '전철 타시려고요?'라고 물은 것 외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없었기에 운영하는 걸까, 라는 시게오의 걱정이 무색하게 탑승장의 시계가 10시를 가리키는 순간 쿠쿵거리는 소리를 내며 전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열린 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올라타는 레이겐의 뒤를 쫓으며 시게오는 잠시 제일 앞칸에 있을 운전실이 궁금해졌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모브."

 가운데 자리에 팔짱을 끼고 앉은 레이겐이 모브를 불렀다.
 
 "네, 스승님."
 "지금 우린 ●●절벽에 갈 거다. 가 본 적 있어?"
 "아뇨, 처음…."

 처음 가봐요. 시게오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목에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깨닫지 못한 순간 입에서 튀어나온 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스승님과 갔었잖아요. 자살 명소로 유명한 관광지라고. 제령 의뢰가 들어와서."
 "그랬지."

 짧게 대답한 레이겐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게오는 잊고 있던 그날의 기억이 머릿속에 들이닥쳤다.
 많은 이들이 거친 파도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는 절벽. 그러나 노을빛이 아름다운 장소였기에 시간이 흘러 관광지가 되었고, 최근에는 그곳에서 자살하는 이도 없었으나, 다녀간 관광객들에게 자잘한 사고가 생겨 악령의 짓이 아닌지 확인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그리고 두 사제는 주말 아침, '오늘'처럼 전철을 타고 그 장소에 갔다. 
 가서…그다음엔?
 기억이 뚝 끊겼다. 정말로 악령이 있었나? 제령하고 돌아왔던가? '그날'은 언제지? 혼란스러워하는 시게오의 머리를 레이겐이 침착하라는 듯이 쓰다듬었다. 어른의 손이었다. 18살의 시게오는 아직 갖지 못한 손. 어젯밤 눈앞의 금발을 차마 쓰다듬지 못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천천히 해. 아직은."
 "스승님……."
 "지금 네 모습 보니까, 가보면 알 것 같고."
 "스승님, 뭔가를 알고 있는 거죠?"

 스승, 레이겐은 대답하지 않았다.




 04.

 기사님 없이도 움직이는 기이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절벽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절벽에 부딪힌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제외하면.

 "악령은…없는 거 같네요."
 "그렇겠지."

 지금에서야 눈치챈 거지만, 레이겐이 평소보다 말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이곳이 조용하다 느꼈는지도 모른다. 레이겐은 조금씩 절벽의 끝으로 다가갔다. 관광지인 만큼 그 끝엔 가슴께까지 오는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었지만, 시게오는 스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붙잡고 싶다 생각했다. 

 "네가 전부 제령했잖아. 모브."

 나무 울타리에 기댄 레이겐이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치 자신이 직접 제령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시게오의 머리로 다시 한번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확실히 이곳엔 악령이 있었다. 악령이랄까, 원념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목숨을 끊은 이들의 부정적인 감정과 영혼이 어지럽게 섞여 괴물처럼 보였던 것이 기억난다. 물론 시게오는 겁먹지 않았다. 다만 서글펐다. 그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뻗었었다.
 아, 그날은 스승님의 32번째 생일이었다. 빈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이 저녁에 있을 레이겐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 서프라이즈 파티를 위해 아침부터 만난 제자는 스승님에게 아무런 축하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다만, 일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에 개인적으로 전할 말이 있었다.

 "기억…났다."

 그래, '할 말'이 있었다. 그것을 레이겐은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제령의 일이 끝난 뒤, 지금처럼 울타리에 기댄 스승님은 물었다.

 "할 말이 있지?"

 레이겐은 시게오의 말을 기다린 것 같았다. 그때의 그는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해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의 그 역시. 말 할 수 없었다.
 
 "말 못해요."
 "모브."
 "하지만, 제가 말하는 순간 당신은……."

 그 날의 일이 전부 떠오르는 순간, 시게오는 지금 자신과 스승이 있는 '오늘'이 어떤 곳인지 깨달았다. 때문에 말 할 수 없었다.

 "당신은, 죽는거죠?"

 이곳은 꿈이었다. 시게오가 붙잡아 놓은, 레이겐의 마지막 꿈.
 시게오는 그 날 레이겐에게 고백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고백하지 못했다. 그렇게 역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을 버스를 탔다. 버스 안 손님은 둘 뿐이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시게오는 레이겐의 어깨에 기대어 우울한 기분으로 잠들었다. 그래서 버스가 미끌어져 절벽 아래로 굴렀을 때 바로 초능력을 쓰지 못했다. 눈을 떴을 때 시게오는 따뜻한 품 속에 안겨져 있었다. 마치 그를 보호하듯 껴안은 팔 안에서 고개를 올려다보면 피를 흘리며 옅게 웃는 스승의 얼굴이 보였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악령이 제령되기 직전에 내게 저주라도 걸었던거겠지. 네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으니 아마 대단한 건 아니었겠지만, 상황이 나빴어."
 "스승님."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난 모브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시게오가 비틀거리며 레이겐에게 다가가 그의 팔에 매달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이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레이겐은 그런 얼굴마저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그의 뺨을 붙잡았다.

 "네가 나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었기에, 난 아직 너에게 붙들려 여기에 남아있는 거지. 하지만, 모브. 아직 살아 있는 네가 계속 나와 함께 있는 건 좋지 않아."
 "당신이 없으면 어차피 전 제대로 살 수 없어요."
 "거짓말이 늘었구나, 모브 군. 넌 내가 없어도 살 수 있어."

 넌 이 세기의 영능력자―레이겐 아라타카의 제자니까.
 잔인한 말을 뱉는 그도 사실은 잠시, 이렇게 둘만 있는 세상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외롭게 34년을 산 저와 달리, 18살의 제자에겐 많은 이들과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것을 모두 빼앗을 수 없었다.

 "난 네가 해주는 고백, 그것만으로 충분해."
 "스승님―."

 스승님, 저는, 당신을.
 모브가 마지막으로 본 레이겐은, 밝게 웃고 있었다. 




 05.
 
 눈을 뜨면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다. 형, 정신이 들어? 리츠의 물음에 시게오는 멍하니 제 손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 자신을 안아주던 스승님의 온기가 생생했다. 그의 대답은 웅웅거려 잘 들리지 않았지만.

 "리츠, 스승님은?"
 "……형."
 
 리츠는 머뭇거렸다. 그의 표정이 대답이 되었다. 모브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자 리츠는 당황하며 팔을 허우적거렸다.
 스승님, 스승님. 중얼거리는 시게오의 말이 아팠다. 바늘이 꽂힌 손으로 눈가를 가렸지만, 눈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시게오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간호사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감정을 겨우 추스를 수 있었다.
 누워있는 시게오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진찰하던 의사는 현재는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며 자세한 검사를 한 뒤 결과를 보고 퇴원해도 괜찮다는 말을 전했다.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시게오는 그런 가족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스승님 없이는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다행이네요. 마침, 중환자실의 환자분도 아까부터 수치가 정상적으로 돌아왔거든요."
 "네?"
 "이대로라면 곧 의식이 돌아올 것 같아요."

 의료 기구를 정리하던 간호사의 말에, 시게오는 놀란 눈으로 제 동생을 바라봤다. 리츠는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으로 레이겐 씨, 고비는 넘긴 것 같아. 다행이야. 정말, 큰일이 나면 형에게 어떻게 말하지 하고…. 답지 않게 말을 쏟아냈다. 시게오가 그런 리츠의 말을 이해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해하고 나자, 그의 주변에 있던 물건들이 전부 둥실 떠올랐다. 어머, 시게! 그만두렴! 옆에 있던 어머니가 급하게 떠오르는 링거대를 잡아 내리며 외쳤지만, 힘을 갈무리 할 수 없었다. 

 "형, 지금 바로 일어나는 건 그만둬 줘……."

 리츠의 말에 시게오가 겨우 밝은 얼굴로 웃었다. 

 스승님. 제대로 말 할 수 있게 됐네요.
 같은 시각, 레이겐이 눈을 떴다.
 


-





마지막을 해피로 끝낼지 새드로 끝낼지 고민하다…어떻게든 해피로 마무리 하려니 조금 허술해져버렸습니다.


레스바스 낙서
저승사자 오소카라 같은 무언가
중딩 바스카라
부기장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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