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하나 들어보겠나? 저 숲속을 걸어가다보면 으리으리한 저택 하나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홀로 살던 주인은 살해당했지. 아, 그 범인을 찾아달라는 의뢰는 아니야. 이미 10년도 더 된 사건이니까. 중요한건 그 다음.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 했거든. 비어버린 저택으로, 당연하다는듯이 부랑자들과 도둑들이 하나 둘 찾아가기 시작했지만...들어간 자는 있어도 나오는 자가 없다는걸세. 미쳐버린 한 남자가 노래하듯 말하기로는, 글쎄 그 저택 주인의 유령이 나온다는거지. 오, 흥미가 조금 동했나? 그래, 그래서 자네에게 내가 말을 건 이유는―…
과연 듣던대로 으리으리한 저택. 그 대문앞에 선 탐정 오소마츠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그 얘기는 들은 적도 없었던 것처럼. 달칵, 하고 쉽게 열린 문 안으로 조심할것도 없이 발을 내딛으면 10년의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정도로 깔끔한 홀이 그를 반기고. 화려한 샹들리에는 역시나 꺼져있었지만,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있어 그리 어둡지는 않았을거야. 호오, 호오. 고개를 끄덕이며 붉은 융단을 밟고 계단을 올라가니, 그 끝자락에 서있는 남자가 보였지. 어쩐지 하얀색 목욕 가운 차림을 하고 있는.
그래, 정말 오랜만의 손님이군. 함께 차를 들겠나?
당신이, 유령?
으응~? 이런 퍼펙트한 모습을 한 가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 이 나의 새빨간 하-트는 여전히―…
뭐?
―…살아있다. 믿지 못하겠다면, 와서 심장 소리를 들려줄수도 있지.
오소마츠가 계단을 마저 올라가면, 남자는 망설임 없이 오소마츠의 머리를 끌어당겨 제 왼쪽 가슴에 안았겠지.
두근. 두근.
일정하게 들려오는 심장소리에, 어쩐지 오소마츠는 안심해버리고. 왜 안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살아있네. 중얼거렸지.
그 뒤로 가진 둘만의 티타임은, 어쩐지 조용하고, 어쩐지 즐거웠어. 해가 질 무렵, 흐릿한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던 남자-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자고 갈텐가? 물었지. 오소마츠가 고개를 저으며 돌아가겠다 말하자, 그는 말리지는 않았으나 조금은 슬픈 표정을 지었을거야. 그에 오소마츠는 저택 문을 나서기 전,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겼지. 그렇게 저택을 뒤로하고 산을 빠져나오며 오소마츠는 역시 그동안 저택에 들어갔다 나오지 못했다는 자들은 소문일 뿐인가, 했지.
오소마츠가 그뒤로 몇 번 더 찾아갈때마다…언제나 카라마츠는 혼자였고, 그러나 함께 즐거웠고,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카라마츠는 물었지. 자고 갈텐가? 그러나 오소마츠는 항상 괜찮다 답했어. 처음엔 그 대답에 실망한 표정을 짓던 카라마츠가, 최근들어 안심한 표정으로 바뀌어 조금 이상했지만.
점점, 오소마츠는 좀 더 그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그렇게…거의 매일 그의 저택에 찾아가기 시작했을 때 즈음, 자연스럽게 카라마츠가 자고갈텐가? 묻자 오소마츠는 처음으로 그럴까? 대답했지. 카라마츠가 들고 있던 찻잔이 바닥을 구르고, 어째, 어째서. 중얼거리는 그의 표정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듯 보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뿐.
…그렇다면, 잠자리를 준비해두지.
잠시 기다려줘. 그렇게 먼저 자리를 뜬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는 고개를 갸웃거렸어. 앞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으니까.
카라마츠가 안내해준건 손님의 방,
…이었으나. 어쩐지 옆에는 카라마츠가 함께 누웠지. 왜인지 묻자, 카라마츠 역시 글쎄, 왜일까. 중얼거릴 뿐. 흘러내린 가운 사이로 보이는 그의 살갗에 오소마츠가 침을 꿀꺽 삼키자, 카라마츠가 낮은 목소리로 오소마츠. 불렀어.
날, 안아보겠나?
카라마츠의 물음을 잠시 이해하지 못했던 오소마츠지만. 그의 눈빛을 본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입맞춤을 나누었지.
…얼마나 긴 밤이었던가.
나른한 기분으로 잠에 들었던 오소마츠는, 목이 타는 갈증에 일어났어. 옆에는 새하얀 몸을 드러낸 채 잠든 카라마츠가 있었고. 설핏 웃어버린 오소마츠가 대충 옆에 걸려있던 가운을 걸치고 복도로 나가면, 어쩐지 낮과는 다른 서늘한 기운이 그를 감쌌어. 이상하게 긴장한 몸. 그리고, 누군가가 따라오는듯한 느낌. 빨리 부엌에 다녀와야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넓은 홀에 도착하는 순간 누군가가 그를 덮쳤지.
오소마츠!
그의 위로 쓰러진건 아까까지 잠들어있던 카라마츠였어. 하지만, 그 말고 다른 인기척이 달아나는 소리를 들었지.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의 입가에 흐르는 피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으로 닦아냈어.
…괜찮다. 익숙하니까.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다리를 베고 누워 이야기를 시작했지. 10년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죽은 카라마츠. 그리고 그 날 함께 죽은 사건의 범인. 매일 밤 반복되는 그날의 일. 그뒤로 밤마다 카라마츠 대신 죽어간 부랑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오소마츠. 기억나지 않는가? 10년전, 너는 이곳에 왔었지. 그땐 초보 탐정이었지만, 이렇게나 컸군.
왜인지 아련한 표정으로 말하는 카라마츠에, 오소마츠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어.
네가 몇달전 이곳을 찾아온 날 느꼈다. 네가 마지막이라는걸. 그동안 이곳에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처럼, 나대신 네가 죽는다면. 그렇다면 이 길고 길었던 밤이 끝날거라고…. 그러나 널 사랑하고 말았다.
이상하게 이 저택에 묵게 되면, 새벽마다 홀린것처럼 깨어나 나 대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연민을 느끼고 말 뿐이었으나, 오소마츠가 그렇게 죽게 둘 수는 없었다며. 자신을 안고 피곤한 몸으로 잠들면, 새벽에 깨어나지 않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았다고…하지만 오소마츠는,
카라마츠 대신 죽을 운명이었을 오소마츠. 그런 오소마츠 대신 다시 한 번 죽음을 받아들인 카라마츠.
이제…동이 트면 끝이구나. 나의 밤은 너무나 길었다. 길었지만, 어제는…어젯밤만큼 행복했던 밤은 또 없었어.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고백을 들으며 그를 껴안았지. 등 뒤로 퍼져나가는 붉은 피를 바라보며, 그는 처음으로 고백했어.
다음생에는, 살아서 만나.
나, 결국엔 카라마츠가 죽은것밖에 못봤으니까 말이야. 희미하게 눈물 서린 목소리를 들으며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게 마지막이었지.
사랑한다는 그의 마지막 고백을 들었을까.
어느새 정신을 잃은 그가 일어났을땐 이미 아침이었지. 그동안 마치 꿈이라도 꾼 것처럼, 폐허가 되어버린 저택을 떠난 오소마츠.
그들이 다시 만나는건 또 다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