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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오키] 어느 겨울



 후우. 목도리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올린 남자가 가만히 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공중에 퍼졌다. 그리고 그 뒤로 흐릿한 인영이 보였다. 아니다. 이젠 흐릿하지 않다. 좁은 골목길에 기대어 있는 소년의 모습은 선명히 보였다. 어젯밤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여전히 길 위에 남아있을 만큼 추운 이 날씨에도, 제복 말고는 그 어떠한 천 쪼가리 하나 걸치지 않은 저 소년은. 그래. 내 것이 될 수 없는 저 소년은.
 처연한 감정이었다. 남자는 감히 저 소년의 이름조차 부를 수 없었다.

 "형씨."

 이제야 남자를 발견한 듯, 소년은 가만히 남자를 불렀다. 형씨, 라.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호칭이었다. 긴토키를 형씨라 부르는 건 소년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미 익숙한 호칭이지만.
 
 '뭘 기뻐하고 있는 거냐, 나는.'

 피식 웃어버린 긴토키는 머리를 긁적이며 오키타에게 다가갔다. 사실은 지나가야 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오키타의 앞에서 멈춰 섰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지나가세요."

 저 때문에 지나가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오키타가 기울였던 몸을 바로 세우며 골목 옆에 바짝 붙어섰다. 그게 아니었는데.

 "땡땡이인 거냐, 아니면 잠복?"
 "땡땡이였으면 이 날씨에 여기 있지도 않았겠죠."

 어색한 공기가 그들을 메우고 있었다. 한때는 그래, 시간만 나면-대체로 오키타의 땡땡이였다- 음담패설과 함께 침대 위에서 뒹굴던 그들이었다. 서로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소년은 다른 이를 사랑했다. 제 누나가 사랑하는 남자를, 자신도 사랑하고 말았다는 소년. 긴토키와의 행위는 단지 위로받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소년의 누나가 죽은 이후로 끝났다. 소년이 일방적으로 찾아오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소년이 남자를 찾아왔던 것이니, 남자가 따로 소년을 찾아갈 명분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더라도 오랜만이네요. 오냐. 같은 시시한 인사말이 전부였다.
 사랑이 아니었다고? 그래. 소년은 이 하얀 머리의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아니었다.
 붉은 눈동자가 긴토키를 올려다봤다. 그 표정에 의문이 한 가득이다. 왜 지나가지 않느냐고 묻는 듯이. 이미 당신과 나는 끝났는데.
 
 "춥겠다."

 세금 도둑 주제에 돈도 없냐. 너흰 왜 사계절 내내 같은 옷이야? 긴토키가 중얼거리며 제 목도리를 풀어 오키타에게 둘러 주었다. 미간을 찌푸린 오키타가 긴토키의 손을 낚아채 목도리를 다시 풀어버렸다.
 
 "목도리는 숨이 막히는 감각 때문에 별로 안 좋아해요."
 "아아."
 
 긴토키는 멋쩍은 표정으로 오키타가 내민 목도리를 다시 받아들였다. 다시 제가 두르기도 뭐해서 손에 걸쳤다. 더 이상은 말 이을 재간이 없다. 예전이었다면 질척거리는 농을 소년의 귀에 속삭여줬을 텐데. 그럼 소년도 지지 않고 제 허벅지에 다릴 두르며 나이에 맞지 않는 수위 높은 발언을 했을 테다. 그다음엔….

 "형씨?"

 오키타의 부름에 긴토키는 흠칫 놀라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이젠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쓸데없는 망상에 빠져버렸다.
 한동안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 쉴 때마다 미세하게 나오는 입김이 그사이를 채울 뿐이었다.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건 소년만이 알 것이다. 다만 그것이 후회만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형씨, 시간 있어요?"
 "뭐?"
 "지금부터 하려고요. 땡땡이."

 -

 오키타는 긴토키를 조용한 카페에 데려갔을 뿐이었다. 선심 쓰듯 남자를 위한 파르페 두 개를 시키고, 저는 오렌지 주스 한잔을 시킨 소년은 턱을 괴고 남자를 가만히 훑어보았다.
 솔직히. 반반하게 생기긴 했다. 저 썩은 눈깔만 아니라면. 아니, 저 죽은 눈동자도 침대 위에서는 밝은 빛을 띠더라지. 아, 백발은 그래. 이런 날씨엔 좀 그렇다. 가뜩이나 흰색 옷을 입고 다니는데, 머리카락까지 흰색이니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 아니다. 꼭 다른 사람에게까지 보일 필요는 없다.
 여기까지 생각한 오키타는 아차, 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래서 안 만나려고 했는데.

 그래, 처음엔 위로였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소년은 다른 이를 사랑했다. 누님이 사랑하는 남자였다. 제 상관이었다. 매일 같이 죽어버리라고 말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에게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알고 있었으니까. 히지카타 또한 제 누님만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래서였다. 해결사니까. 망할 상관에 대한 감정을 대신 위로해 줄 사람은 그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와 몸을 섞으면 섞을수록 다른 감정이 생겼다. 입으로는 저질 농담을 하면서도 그는 소년이 너무 소중해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숨기려고 했던 거 같지만, 워낙 눈치가 빨랐던 탓에 소용이 없었다. 그래, 그는 저를 사랑했다. 소년은 그것을 알면서도 못된 아이답게 모르는 척했다. 아직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기도 힘들었다. 그는 섹스파트너.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소년은 외로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조금씩 소년에게 사랑을 넘겨주었다. 그도, 소년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조금씩. 나중엔 그 사랑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남자의 사랑이 소년의 사랑을 헷갈리게 할 정도로.

 그리고 누님이 세상을 떠났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소년은 두 남자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님을 신경 쓰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소중했던 사람인데. 유일하게 편하게 기대어 쉴 수 있었고, 유일하게 지켜주고자 했던 사람인데. 고작 연애를 위한 사랑 때문에, 나는 내 유일한 가족을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냈나.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여느 때와 같이 히지카타에게 저주를 걸었고, 긴토키는 더이상 사적으로 찾아가지 않았다. 뒷늦게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그렇게 마음먹었다.

 "형씨."
 "오늘 그 소리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
 "형씨를 잠깐 좋아했어요."
 
 파르페를 뒤적이던 손이 멈췄다. 답지 않게 멍한 표정으로 소년을 쳐다봤다. 

 "뭐?"
 "아니, 어쩌면 사랑이었을지도 몰라요."
 "어이, 지금 무슨…."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뭔가를 말하려던 긴토키의 입이 닫혔다. 그래, 방금 기대를 조금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못 알아들은 것처럼 반응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는 제 마음을 소년에게 전달할 수 있는 걸까, 했으니까. 하지만 오키타는 그럴 기회조차 도 주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에요."

 긴토키에게 못 박듯이, 혹은 저 자신이 다짐하듯이 한 번 더 내뱉은 오키타가 고개를 들어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소년의 눈동자는 고요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마웠어요, 형씨."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도 네 녀석을 사랑했다고? 그게 인제 와서 무슨 소용일까. 이미 소년은 감정을 정리했다는데. 소년은 방금, 남자가 더는 짝사랑 조차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래."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사랑했다가 아니야. 사랑해. 아직도. 목까지 올라온 말을 삼킨 긴토키는 오키타에게 씩 웃어 보였다.

 "어려운 일 있으면 찾아와. 단, 이제부터는 지인 할인 이딴 건 없을 거다, 이 매정한 녀석아."
 "예."

 오키타도 긴토키가 짓고 있는 표정과 비슷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카페를 나섰다. 홀로 남은 남자의 표정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창밖에, 눈 덮인 거리를 걸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고, 아니, 이것조차도 착각일 것이다. 
 소년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남자는 목도리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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