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일본 신화풍 오소카라가 보고 싶다...대대로 내려오는 주술사 가문의 차기 가주 오소마츠와, 지금은 메말라버린 강의 신이었던 카라마츠로....

 

 




 모두가 잠든 새벽, 툇마루와 이어진 문 가까이에 등을 기대고 앉으면, 잠들지 못한 벌레들의 울음소리 사이로 맑은 강물 소리가 들려오곤했다. 조금 더 어렸을적에는 복도를 지나다니던 누군가의 옷자락을 붙잡고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데려다달라 했던거 같지만, 그런 오소마츠의 부탁을 들은 이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어른들이 어린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그의 어깨를 붙잡은 손이 떨려오던 감각만은 기억에 남았다.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 한 것인가.

 메마른 강물이 100년이 지나도록 차오르지 않았다는걸 오소마츠가 알게된 건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다.

 물이 귀했던 시절, 강물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주술사 가문은 강의 신을 붙잡아 깊숙한 곳에 가둬두었다. 욕심으로 저지른 일은 곧 두려움이 되었고. 신이 풀려나는 순간 그들에게 내릴 벌이 무서워 그들은 신을 숨겼다. 강물이 메마르는 동안에도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신은 잊혀졌고. 강의 신을 지하 깊숙이 숨긴 이들은, 차마 신이 있는 곳에 찾아 가지도 못했다. 보이지 않는 강물 소리가 들리면, 신이 분노하여 자신들을 물에 잠겨 죽게 만드는것은 아닌지 겁에 질렸다.
 그러나 신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강물을 차오르게 할 힘이 사라진 것에 슬퍼하긴 했어도. 그를 찾아오는 이 하나 없어 외롭기는 했어도.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 살아 숨쉬는 이들을 사랑했다. 때문에 미워할 수 없었다.

 100년이라는 세월은 그에게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어쩌다 저를 발견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때 가슴 깊숙한 곳에서 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오소마츠라 자신을 소개한 아이는 신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이름이 없다는 그에게 카라마츠라는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했다. 몇 천년 만에 가져본 이름을 신은, 카라마츠는 몇번이고 되뇌었다. 아주 소중한 보물을 얻은 표정으로. 그에게 이름을 준 아이가 카라마츠는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신을 봉인한 자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 오소마츠.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카라마츠를 찾아왔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카라마츠를 구속한 힘을 풀고 싶었지만, 아직 덜 자란 그는 힘이 부족했다. 카라마츠는 저를 찾아와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했다.
 무언가가 억울해진 오소마츠가, 인간이 밉지 않아? 라고 물었지만

 아니, 여전히 인간은 사랑스럽구나.

 하며 카라마츠는 진실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반대로 오소마츠는 인상을 찡그렸다. 공평하게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오소마츠가 성인이 되던 해. 보름 뒤에 있을 그의 생일은, 그가 정식 가주가 되는 날이기도 했다. 오소마츠는 그 날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가주가 되는 순간, 선대의 힘들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카라마츠를 아래에서 꺼내올 수 있었다. 둘이서만 함께하던 시간도 좋았으나,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자유를 돌려주고 싶었다. 감옥은 아니었으나 감옥과도 비슷했던 어두운 밑바닥과 다른, 새파란 하늘을 함께 보고 싶었다. 카라마츠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강물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그의 옆에 항상 함께하고 싶었다.
 오소마츠의 뜻을 알아챈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카라마츠를 찾아갔다. 공포가 공포를 이겼다. 공포를 짊어진 이들은 신을 해했다. 오랜 시간 봉인되어있던 신은 그들에게 상처 입을 만큼 나약했지만, 그들을 상처 입힐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겁에 질린 얼굴로 눈물 흘리며 손을 드는 이들을 차마, 차마 미워하지 못했다. 신이 사랑하는,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는 인간이었고, 신을 사랑한 이도 인간이었다. 

 의식이 희미해져가던 와중에, 카라마츠는 빛을 보았다. 붉은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빛의 가운데에 서있었다. 오소마츠가 손을 뻗었다. 카라마츠의 발목을 묶어놓은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가자, 카라마츠.

메마른 강물이 차올랐다. 신의 푸른 기모노 자락이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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